[자문위원 칼럼] 안전보건과 ESG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

2021.08.03

2020년도를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안전보건 분야는 새로운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G7 중심의 국제사회 발전 패러다임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되고 이를 위한 새로운 노멀(new normal)이 등장하면서 안전보건 분야 역시 전환을 맞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전환 추세의 하나는 미디어를 통해 연일 언급되는 소위 ESG 경영의 ‘S’ 기둥의 중추적 기능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추세는 근로자 또는 시민의 중대 재해에 대해 기업의 경영책임자, 원청, 발주처 등이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행으로 안전보건의 사회적 책임이 확장된 것이다. 오늘날의 안전보건 분야는 단순한 관리/통제 영역에서 기업이 투자 유인 창출을 위해 다루어야 할 재무 영역과 기업이 준법 감시(compliance)해야 하는 법적 영역으로 비중이 이동되고 있다.

1. 안전보건과 ESG: 재무 기능의 강화
안전사고 발생은 어쩔 수 없는 신의 뜻(Acts of God)이기도 하지만, 인적 오류에 따른 사고도 대부분이기에 통제 관리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1912년, NSC 단체 설립을 계기로 3E 접근방식이 도입되었다. 그 후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라는 관리적 접근방식과 인간 또는 조직 심리 요소를 활용하는 HOF 접근방식으로 진화되었으며, 근래에 와서는 문화적 접근과 복잡계와 신경인지 기반의 회복 탄력성 접근방식으로 성숙해 가고 있다. 아울러, 접근방식이 무엇이든 안전보건 관리의 핵심 목표는 조직 내부통제(internal control)을 통한 재해율 감소라는 안전성과 달성이며, 사업장 내 근로자, 감독 기관 그리고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 발전 패러다임이 SDG(지속가능발전목표) 추구로 전환되면서 투자 기관과 개별 투자자들은 투자 대상 기업의 ‘E(환경)’, ‘S(사회)’, ‘G(지배구조)’를 투자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하게 되었고, 근로자 안전보건은 근로자 인권, 사업장 구성원의 다양성과 임금 정의 등과 더불어 ‘S(사회)’의 핵심 사항으로 자리 잡는다. 특히 COVID-19에 따른 사업장 근로자의 보건 확보는 사업장 생산성 유지에 중요해지고, 협력 업체 근로자의 사망사고는 추악한 ‘갑과 을의 관계’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맞고 있다. 이런 격변 속에서 투자자는 투자 위기관리 차원에서 사회 문제에 더 우선순위를 두면서 기업의 ESG 경영 중 ‘S’기둥을 비중 있게 주목한다. 미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구호 패키지에 근로자를 위한 안전보건 규정을 강화하고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유급 병가, 가족 및 의료 휴가의 양을 확대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된 것은 이런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잘 보여 준다.

2. 안전보건과 중대재해처벌법: 준법 감시 기능의 강화
위험작업에 대한 도급이 제한되고, 위반에 대한 벌칙이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안전보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함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과 같이 이 법의 취지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나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도 형사처벌하여 중대재해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위반자에 대한 처벌의 하한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상한을 대폭 상향하여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고 도의적인 책임만 지는 사례를 줄이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산업 활동은 협력을 바탕으로 네트워크화되어, 안전보건 조치이행 책임 소재를 명백하게 확정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하여 책임 명확화의 일환으로 원청에 포괄적 장소 구속성 책임이 주장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오늘날은 SNS 시대다.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의 부정적인 내용은 실시간으로 전파되어 기업의 브랜드나 명성 같은 무형 자산 가치가 하락하고 기업매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재해율이 1% 증가하면 매출액 성장률은 0.45~0.71% 정도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발표가 있다. 더구나 지금은 ESG 경영 시대다. 안전보건 사고는 기업의 가치 평가 기관에 의해 위험 지수로 반영되고, 투자자나 투자 기관은 이 정보를 의사결정에 반영한다. 곧, 중대 재해는 준법 감시 열등이라는 법률적 가치 하락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재무적 가치 하락으로 연계되는 시대다. 협력 및 고용 형태를 떠나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에 대해서 원청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계약 조항상 안전사고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투자가의 투자 위험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글쓴이: 윤석준 SB Korea 자문위원

윤석준 원장은 미국 University of Alaska Fairbanks, EHS Risk Assessment and Management Ph.D., 1990년말 안전보건경영시스템에 대한 연구와 2000년 초 행동기반안전 연구 및 도입을 하였으며, 현재 안전문화 및 기업의 안전보건 증진에 대한 연구와 컨설팅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안전문화진흥원 원장 및 고려대학교 보건과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부발전, 현대제철, 삼성전자, 포스코 등 중대재해 사업장 사고 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